2008년 여름의 기억

2008. 6. 24. 00:59사진마을/사람이야기

반응형
SMALL
오랜만에 집에 다녀왔다. 한여름 무더위에 장마까지 겹쳐서 날은 푹푹찌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속은 퀘퀘한 습기와 음습한 기운이 뒤 섞여 매우 불쾌했다. 모처럼 주말에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항상 바삐 움직이기는 하지만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고향방문이 항상 즐거울 수 만은 없는 일.. 더욱이 요즘같은 여름철은 한걸음만 움직여도 한바가지의 땀을 흘려대는 나란놈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내라고 부모님생각에 짜증들을 덮어두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지난번 선배 결혼식을 핑계삼아 잠시 들렸던걸 치더라도 벌써 2달이 훌쩍지나버렸으니 태생이 얼마나 무심한 놈인지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점심을 먹고 나가 놀다가 하루가 가고 아침에 일어나 아버지께서 새로이 자리를 잡으신 사무실로 내려가봤다.
한여름 찌는 날씨속에도 비가 조금 온다고 그새 작업장 한켠에 있는 화로에 불을 붙이셨다. 내가 8살쯤인가 아버지께서 들어가신 자동차 부속공장에서 작년까지 저 뜨거운 불덩이 옆에서 일을 하셨으니 벌써 그게 20여년이나 되어버린 취미 같은 일이신지라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해보면 막연히 듣고 흘리기만 했지 정확히 아버지께서 어떤일을 하시는지 한번도 여쭈어 본적이 없었던것 같다. 어찌보면 아들놈이 참으로 무심한지라 그간 많이 섭섭하셨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 처음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라 조금 낯설고 어색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옆에만 서있어도 땀이 등과 목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작 한걸음 다가서는 일이 숨이 막힐정도로 힘들었는데 그 보다 몇배는 더 뜨겁고 위험한 현장에서 20여년을 묵묵히 참아오신 분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한번도 그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년 겨울 정년퇴직을 1년 남기시고 갑자기 퇴직하신 아버지께서는 오래전 부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고물상을 차리셨다. 조금 급한 성격과 쉬고는 못견디는 탓에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집에서 쉬고 바로 일을 시작하셨다. 조금 더 쉬시면서 건강도 챙기시고 여행도 다녀왔으면 하는 자식들의 이야기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또 일을 시작하신다. 길고도 짧은 6개월 동안 참 많은 일을 하셨다. 멀리 있어서 자주 가볼 수는 없지만 항상 변하는 사무실과 집 그리고 마당 한가득 쌓여진 저 고철들이 두분이서 다 모아오신거라니 보지 않아도 어찌 지내고 계신것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고되게 일을 하시면서도 무조건 괜찮다고만 하신다. 하루하루 예전같지 않은 두분을 뵐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아직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못난 아들놈이 한심하기도 하고 가끔은 조용히 안아드리고 싶은데 겉으로 표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밉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보다 조금 밝아보이는 두분표정에 마음이 놓이기도 하지만 위험천만한 환경이 또 다른 걱정을 불러온다. 항시 해오던 일이시니 걱정이 없다하시지만 돌아 나오는 내내 마음이 쓰이는건 어쩔 수 없는 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고된일인지 잘 알 수 있지만 위험하다며 곁에도 못오게 하시는 아버지.. 아직 두분 눈에는 철없는 막내아들일 뿐인 내가 옆에서 거들어 드릴건 몇마디의 대화와 지금 순간을 기억하는 일이 전부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을 찍는답시고 돌아다닌게 벌써 횟수로 6년째다. 생각해보면 그 많은 컷 중에 부모님 사진한번 제대로 찍어드린적이 없는것 같다. 한사코 뿌리치는 두분을 억지로 오시게해서 찍은 사진이 이렇게 나와버렸다. 항상 이상하다고 안찍으시겠다는 엄마때문에 항상 두분사진은 한분이 꼭 이상하게 나온다. 더 늦기전에 가족사진 한번 찍자고 하시는게 벌써 몇해인데 뿔뿔이 흩어져 지내는 식구들이라 한번 모이기가 너무 힘들다. 올해가 가기전에 꼭 가족사진을 찍자고 말버릇 처럼 되뇌여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또 서울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 휑~하니 왔다가는 자식놈 돌아가는 길을 꼭 보고서야 들어가시겠다는 걸 한참을 실갱이한 끝에 결국 먼저 돌아서야 했다. 하루 하루 다르게 주름이 늘어가는 엄마 얼굴을 보고 있으면 왠지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똑바로 바라 볼 수가 없다.

객지에 나와서 생활을 한게 벌써 11년이나 되었다. 하루 하루 가는 시간에 내게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자식들 다 떠난 고향에서 두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고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렇게 나도 조금은 나이가 들어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응형
LIST

'사진마을 > 사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Bad boys~!!  (0) 2008.10.15
Fuji FP-1_Friend  (0) 2008.09.21
R-D1(s) 카페 정모  (2) 2008.07.29
HAPPY BIRTHDAY TO ME!!  (3) 2008.07.20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4) 2008.06.12
아직도..  (1) 2008.06.11
잊을 수 없는 그날의 함성  (2) 2008.06.08
play ball~!  (0) 2008.04.22